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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을 더 크게 볼까, 하나의 결핍이 삶 전체를 가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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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는 입을 옷이 있는데 입을 옷이 없는 것 같습니다.

괜찮은 직장이 있는데 더 좋은 직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은데 나를 인정하지 않는 한 사람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분명 가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없는 것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감사해야지. 가진 것을 봐야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감사하지 못할까”가 아니라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왜 없는 것 하나가 내가 가진 많은 것을 이렇게 쉽게 가릴까.

부족한 것은 자꾸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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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돈이 부족하면 돈과 관련된 문제가 더 크게 보이고, 시간이 부족하면 남은 시간을 계속 계산하게 됩니다.

Shah, Mullainathan, Shafir의 연구에서는 결핍이 사람의 주의를 부족한 문제에 집중시키는 대신 다른 중요한 것에는 쓸 수 있는 관심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배가 부를 때보다 배고플 때 음식이 더 잘 보입니다.

문제는 부족한 것을 알아차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하나가 내 삶 전체를 해석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집이 없다는 사실이
“나는 뒤처졌다”가 되고,

원하는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이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가 되고,

결혼하지 않은 것이
“내 인생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으로 번집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없는 것을 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는 나까지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괜찮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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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음속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집만 있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연봉이 조금만 더 오르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원하던 관계가 이루어지면 지금의 공허함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얻으면 기쁩니다.

그 기쁨을 가짜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좋은 변화에도 익숙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적 적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좋은 조건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다시 일상의 일부가 되고, 행복을 유지하려면 조건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만 있으면”의 빈칸에는 계속 새로운 것이 들어갑니다.

하나를 얻고 나면 다른 하나가 보입니다.

결핍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평생 현재의 삶을 미완성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사보다 조금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왜 부족한 것이 없어져야만 내 삶이 괜찮다고 믿고 있을까.

에덴에서도 시선은 하나의 나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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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처음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의 나무 열매를 자유롭게 먹도록 허락하십니다.

허락된 것은 풍성했습니다.

경계로 남겨진 것은 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뱀은 그 한계에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결국 사람의 눈에는 주어진 수많은 것보다 먹지 못하는 하나가 크게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단순히 인간의 욕심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내게 좋은 것을 주고 계신가.”

결핍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을까.

왜 하나님은 이것만큼은 주시지 않을까.

이것이 없는 삶도 정말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없는 것 하나는 더 이상 조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고,

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감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시선을 되찾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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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결핍 앞에서 무조건 만족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에게 “그래도 감사하세요”라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결핍은 실제로 아픕니다.

원하는 것을 구해도 됩니다.

기도해도 되고, 노력해도 됩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갖지 못한 하나만으로 우리 삶 전체를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내게 없는 것이 있다는 것과
내 삶이 부족한 삶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과
내가 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감사는 억지로 “나는 충분히 많이 가졌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시선을 되찾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하나가 내가 받은 모든 것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 하나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까지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오늘 필요한 질문은

“나는 왜 감사하지 못할까”보다 이것일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이것이 언제부터 내 삶 전체를 설명하게 되었을까.”

결핍은 내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핍보다 더 큰 한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없는 것이 나를 설명하기 시작할 때, 어쩌면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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