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부모라면 자녀를 사랑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라면 자녀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고,
힘들 때는 곁에 있어줘야 하며,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기대한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면 서운했다.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 생각은 내게 너무나 당연했다.

사랑하려다 알게 된 것
청년부 시절, 하나님을 믿으며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면서 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내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 내 방식대로 살아보았지만,
그것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잘해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친절하게 말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면 사랑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사랑해 보려고 하니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랑하려면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참아야 할 때도 있었다.
한두 번 잘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마음을 내어주어야 했다.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도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었다.
사랑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헌신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컸지만,
한 사람을 오래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랑은 내 안에 충분하지 않았다.
잘해주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런 사랑을 받아보셨을까
그 사실을 깨닫던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이 생각났다.
‘부모님은 이런 사랑을 받아보셨을까?’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부모님은 처음부터 부모님이었다.
나를 낳고 돌보며 사랑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모님도 처음부터 부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도 한때는 어린아이였다.
누군가가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기다려주기를 바라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를 원했던 아이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부모님은 그 마음을 얼마나 알아주셨을까.
부모님은 충분히 안겨보고,
따뜻한 말을 들으며,
실수해도 기다려주는 사랑을 받아보셨을까.
부모님이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부족한 모습만 보던 내 눈에 사랑이 필요했을 한 사람이 보였다.
부모님의 지금 모습도 그분들이 살아온 시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아팠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나는 계속 사랑을 요구하고 있었다.
‘부모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부모님이 내게 주지 못한 것만 바라보았다.
정작 부모님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미안했다.

달라진 것은 나의 시선이었다
부모님의 삶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하자 서운했던 마음도 달라졌다.
부모님을 미워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일이 없었던 것이 된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철없는 자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을 사랑이 필요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보다,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의 부족함은 잘 보면서도 그 부족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기억하면서도 부모님이 받지 못한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배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장 19절)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 아니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조금씩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을 보게 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부모님에게로 향했다.
물론 부모님의 삶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잘못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도 없다.
다만 내게는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부모님을 ‘나를 사랑해 줘야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던 자리에서,
‘그분도 사랑받아야 했던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한다.
때로는 받지 못한 사랑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은 누구에게 사랑받았을까.
그리고 부모님도 한때는 누군가의 품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