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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는 왜 서로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느낄까? 정년 연장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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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법정 정년이 앞으로 연장될 경우, 임금피크제를 추가로 확대하지 않고 이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당장 정년을 65세로 늘린 것은 아니다. 법이 바뀔 경우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노사는 동시에 2027년 하반기 200명, 2028년 300명 등 기술직 500명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 합의안은 8월 31일 조합원 투표에서 61.55%의 찬성을 얻어 최종 가결됐다.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그러나 취업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정년이 늘어나면 내가 들어갈 자리는 더 줄어드는 것 아닐까.”

한쪽에는 더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일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현대차 정년 연장, 청년의 일자리는 정말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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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용에 대한 걱정을 단순한 세대 갈등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KDI가 2020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과거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민간 사업체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을 근로자가 1명 많을 때 고령층 고용은 0.6명 증가하고 청년층 고용은 0.2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큰 사업체에서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물론 이 연구는 2016년 전후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지금 논의되는 정년 연장 효과를 그대로 예측하는 숫자로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년을 늘리는 것과 청년고용은 서로 전혀 관계없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비용과 자리는 무한하지 않다. 임금체계와 생산성, 신규채용 방식이 그대로라면 누군가가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진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청년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 “청년들을 위해 이제 그만 나가라”고 말하는 것도 쉬운 답은 아니다.

그에게도 생활이 있다.

아직 갚아야 할 돈이 있을 수 있고, 가족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끊기는 기간도 걱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생 일해 온 사람에게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비용’으로만 계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누군가 나가야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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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바라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장면을 만나게 된다.

젊은 사람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한다.

중년이 되면 밀려나지 않기 위해 경쟁한다.

나이가 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아 있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의 상대만 달라질 뿐 우리는 평생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과 아들의 첫 출근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조금 더 일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기다려야 하고, 한 사람이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먼저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그런 충돌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현실에 익숙해지면서 놓치는 것도 있다.

사람의 가치를 ‘회사 안에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가’로 판단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성공한 사람이 된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이전만큼 생산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사람은 비용이 된다.

청년도 다르지 않다.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뒤처졌다고 생각한다. 몇 번의 취업 실패가 어느새 자신의 존재에 대한 평가가 된다.

두 세대가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비슷한 두려움이 있다.

‘내 자리가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의 가치는 입사와 퇴직 사이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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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사람을 바라보는 출발점은 조금 다르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말한다.

무엇을 이루기 전부터 존재의 가치가 먼저 주어졌다.

이 시선으로 바라보면 취업을 기다리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도, 정년을 앞둔 예순 살의 노동자도 먼저 한 사람이다.

아직 직장을 얻지 못했다고 가치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예전만큼 빠르게 일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복음은 우리의 자리를 더 단단하게 지켜주는 성공의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와 성과가 나의 존재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정년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한 세대의 요구를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질문을 더 진지하게 하는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하면서도 청년의 진입을 막지 않는 임금체계는 가능한가.

기업은 정년 연장을 신규채용 축소로 해결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청년의 기회를 지키면서도 고령 노동자를 사회의 부담으로 취급하지 않는 길은 없는가.

정년 연장에는 분명 비용이 따른다.

그래서 임금체계와 직무, 생산성, 신규채용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현대차가 이번 합의에서 정년 문제와 함께 기술직 500명 신규채용을 포함한 것도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다만 500명의 채용만으로 정년 연장이 앞으로 고용시장에 미칠 모든 영향을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세대를 위해 다른 세대를 희생시키는 쉬운 답이 아닐 것이다.

조금 더 어렵더라도 두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과 아들의 첫 출근이 서로 싸워야 한다면, 문제는 두 사람 중 한 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정년의 숫자보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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