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연금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받을 자격이 있어도 신청해야 했다. 공단을 방문하거나 온라인으로 청구하고, 필요한 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세금과 관련해 자신이 공제받지 않은 보험료가 있다면 또 다른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은행이나 공공기관까지 가는 것 자체가 하루의 큰일이 되기도 한다.
권리는 있는데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다.
권리는 있는데, 받지 못하는 사람

국민연금공단이 2026년 9월부터 이런 절차를 조금씩 바꾸기로 했다. 우선 수급 조건이 단순하고 명확한 사람부터 별도의 청구 없이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소득공제를 받지 않은 보험료 내역도 국세청과 전산으로 확인해 연금소득세 과세 과정에 반영한다.
일부 농어촌 지역에서는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연금을 현금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도 시행한다.
작은 행정의 변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변화에서 한 가지 질문을 보게 된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도움을 받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많은 제도를 ‘신청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격이 있으면 찾아보고, 알아보고, 서류를 준비해서 신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청하지 않은 사람을 보며 쉽게 말하기도 한다.
“왜 신청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 번의 신청이 생각보다 높은 문턱일 수 있다.
정보를 찾는 능력도 다르고, 몸의 상태도 다르고, 곁에서 챙겨줄 사람이 있는지도 다르다. 똑같은 문을 열어두었다고 해서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찾아오세요”에서 “찾아갑니다”로

여기서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필요하면 찾아오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혹시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잘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흔아홉 마리가 안전하다는 사실보다 보이지 않는 한 마리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제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향에 대해서는 생각하게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련해놓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을 받을 힘조차 없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을 먼저 보는 시선

우리는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찾아오지 않는다고 받을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때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사회는 문을 넓게 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까지 걸어오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의 시선도 늘 그곳을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 사람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