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 사람을 찾아야 할 기록에는 이미 ‘종결’이라는 말이 적혔다.
지난 5월 제주에서 한 여성이 실종됐다. 이후 알려진 제주 실종여성 사건에서는 담당 경찰관이 실제 생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실종 사건을 종결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은 실종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뒤에도 처음에는 자살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에서는 시신의 부패로 정확한 사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바라보며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추측보다 다른 한 단어다.
‘종결.’
실종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사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은 먼저 끝나 있었다.
물론 수사기관은 수많은 사건을 다뤄야 한다. 상황을 판단하고 가능성을 좁히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모든 판단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보다 판단이 먼저 끝나 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 하나가 남았다는 뜻이 아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적어도 확인될 때까지 그의 자리는 비어 있어야 한다.
그 빈자리를 행정적인 문장 하나로 너무 빨리 닫아버릴 수는 없다.
이번 제주 실종여성 사건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기록보다 뒤로 밀려난 것은 아니었을까.
판단이 사람보다 앞설 때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수사기관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도 사람을 꽤 빨리 종결한다.
누군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면 이유부터 정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야.”
“본인이 선택한 일이겠지.”
“그 정도면 어쩔 수 없지.”
몇 마디면 한 사람이 설명된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행동 하나를 보고 그의 삶 전체를 판단한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일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모른다고 말하기보다 원인을 하나 정하는 편이 편하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정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분류하면 사건도 사람도 이해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의 삶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들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훨씬 많은 두려움과 기대, 상처와 관계가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빠른 결론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마음인지 모른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 남겨두는 용기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종결’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숫자로만 본다면 아흔아홉 마리가 남아 있었다.
하나쯤 없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목자는 그렇게 계산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
그 한 마리가 숫자 하나가 아니라 한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그 한 사람을 향한다.
사람들이 이미 끝났다고 말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본다.
사람들이 실패라고 이름 붙인 삶에서도 존재를 먼저 보신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지나쳐 버린 사람 앞에서도 쉽게 돌아서지 않으신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괜찮은 사람만 찾아오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잃고, 넘어지고, 스스로도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 시선을 보여준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인정한 사람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셨다.
그래서 복음은 한 사람의 가치를 성과나 상태로 결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이유는 그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한 여성이 어떤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수사를 통해 더 확인되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일을 우리가 대신 추측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 앞에서 우리 자신의 시선도 돌아볼 수 있다.
나는 누군가를 너무 빨리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이야기를 이미 끝내버린 것은 없는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사람처럼 여기지는 않았는가.
사람은 우리가 붙인 몇 개의 단어보다 크다.
한 번의 실패보다 크고, 하나의 행동보다 크며, 다른 사람이 내린 판단보다 크다.
누군가를 아직 다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한 사람도 그렇게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