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된 일은 말하고 싶습니다.
합격한 소식은 알리고 싶고, 일이 잘되면 누군가 알아줬으면 합니다. 사진도 남기고 싶고 때로는 자랑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실패는 다릅니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말.
사업이 잘되지 않았다는 말.
승진에서 밀렸다는 말.
시작했던 일을 결국 포기했다는 말.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쉽게 꺼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물으면 대충 넘어갑니다.
“그냥 잘 안됐어.”
왜 우리는 실패를 숨기고 싶을까요.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일이 실패한 것과 내가 실패한 것은 다르다

실패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계약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준비했던 일이 기대만큼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 사건에서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역시 나는 능력이 없나 봐.’
‘나는 원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왜 나만 이럴까.’
“이번 일이 실패했다”가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로 바뀝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지점에서 수치심을 주목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일수록 실패를 경험했을 때 더 강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실패를 가까운 사람에게 알리려는 의향도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됐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실패 경험과 그것을 숨기려는 행동 사이에 강한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성공은 드러내고 싶게 만들지만, 실패에서 생긴 수치심은 자신을 감추도록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실패 그 자체만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 때문에 초라해진 나 자신을 숨기고 싶은 것인지 모릅니다.
실패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 것 같아서

실패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있습니다.
“저 사람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그 말을 실제로 듣지 않았는데도 먼저 상상합니다.
그래서 실패를 설명할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래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패가 아픈 것도 힘든데, 그 결과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평가가 되는 것은 더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영역의 성취를 자기 가치와 강하게 연결할수록 실패가 자존감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숨기는 행동을 단순히 체면이나 허영이라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여줘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일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이미 알고 계셨다

베드로에게는 숨기고 싶었을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감옥도 죽음도 함께하겠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붙잡히자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더 아픈 것은 예수님이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에게 그날의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믿고 있던 모습까지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망쳤습니다.
나는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인했습니다.
실패한 일이 곧 실패한 자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에서 세 번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질문은 베드로의 세 번의 부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그 실패 속에 묶어두지 않으십니다. 다시 양을 맡기며 앞으로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모른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베드로의 마지막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 차이가 중요합니다.
실패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실패가 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실패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해서 만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성공하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회복이라면 우리는 또 성공해야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조금 다른 회복을 보여줍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먼저,
실패한 모습으로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은 실패를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으십니다.
잘못을 잘했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하지만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과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같은 문장으로 묶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실패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깁니다.
실패를 말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만, 이 일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정체성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내 실패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운 날,
한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실패는 내가 겪은 일이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이름까지 되지는 않습니다.

